한국 간호사들이라면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악습 문화가 있다. 바로 ‘태움 문화’다. 태움 문화란 한국 간호계에서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신입 간호사에 대한 가혹한 교육 행위를 말한다. 특히 ‘태움’은 신입 간호사들을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간호사들 사이의 은어이다. 주로 선배 간호사가 후배 간호사를 반복적으로 질책하거나 모욕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 문화는 “실수가 생기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에 철저히 가르쳐야 한다”라는 명분 아래, 폭언, 무시, 공개 망신, 고립 등 심리적 괴롭힘이 정당화되고 있다. 이러한 태움은 직장 내 괴롭힘, 감정노동의 심화, 높은 이직률로 이어지며, 실제로 몇몇 간호사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나타났다.
태움 문화가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만큼 심각한 문제인지, 다음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첫 번째 사례는 2018년 서울아산병원 신입 간호사였던 고(故) 박선욱 간호사 사건이다. 그녀는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병원 기숙사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유족과 동료 간호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박선욱 간호사는 지속적인 야간 근무와 과도한 업무, 선배 간호사들의 질책과 모욕적 언행에 시달리며, 사망 직전까지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알려졌다. 유서에는 태움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병원 업무로 인한 고통이 간접적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이 사건은 언론과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고, 간호계에 만연한 태움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대한 간호협회는 ‘태움 근절 선언문’을 발표했고, 병원들도 가이드라인 마련 및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 확대에 나섰다. 비록 사건 발생 1년 후에야 산업재해로 인정되었지만, 이 사건은 많은 간호사들이 용기를 내어 태움 문화를 고발한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 사례는 드라마 노무사 노무진 3~4화에 등장한 조은영 신입 간호사 에피소드다. 이 드라마는 억울하게 죽은 유령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노무사 노무진이 주인공이다. 신입 간호사 조은영은 선배 간호사의 태움과 의사의 의료 과실을 자신이 억울하게 누명 쓰고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이다. 병원 측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간호사들에게 비밀 유지 각서를 강요하고, 오히려 조은영을 괴롭힌 선배 간호사를 가해자로 몰아 따돌림 한다. 하지만 노무진은 사건의 증거를 수집하고 진실을 파헤치며, 선배 간호사조차 병원 내 위계 구조와 열악한 근무 환경의 피해자였음을 밝힌다. 더군다나 그저 조은영 간호사에게 위로의 말만 건네던 또 다른 선배 간호사가 용기를 내어 직접 인터뷰에 나서 조은영 간호사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린다. 결국 의료사고의 진실도 드러나고, 조은영 간호사의 죽음은 산재로 인정된다. 이 에피소드는 실제 간호 현장에서의 태움 문제를 현실적으로 묘사하여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오늘 우리는 두 가지 사례를 통해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이며, 단순한 갈등이 아닌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임을 확인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태움 문화를 알고는 있었지만 방관하거나, 용기 내어 말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침묵하지 말고, 우리 모두가 태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알리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마지막으로 오늘 이 기사를 읽은 독자들에게 질문하겠다. “우리는 왜 죽어야만 그 사람이 겪은 고통을 인정하고, 살아 있을 때는 방관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