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WM의 캠퍼스를 거닐다 보면, 늘 시야를 거슬리는 건물이 있다. 마치 회색 콘크리트 덩어리를 억지로 세워놓은 듯한 그 모습은, 내게는 도무지 ‘아름다움’이라는 단어와 연결되지 않는다. 본인의 영어 교수조차 “우리 학교에서 제일 못생긴 건물이 내 사무실 있는 건물”이라며 웃어넘길 정도니, 본인과 본인의 친구들이 “사회주의 빌딩 같다”고 농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문제는 그 농담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꽤 정확한 지적이라는 데 있다.
“브루탈리즘“
브루탈리즘 건축은 화려한 장식을 모두 던져버리고, 노출 콘크리트라는 차가운 질감만 남겼다. 건축가들은 이 방식을 “본질을 드러내는 합리적인 선택”이라 설명했지만, 내 눈에는 그저 인간미 없는 콘크리트 덩어리일 뿐이다. 전쟁 직후 도시 재건, 대량 주택 공급이라는 시대적 필요 명분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명분이 건축을 아름답게 만들지는 않는다. 당시 건축가들은 노동자 계층을 위해 값싸고 실용적인 건축을 지향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어떠했는가. 1970년대에 이르러 브루탈리즘 단지들은 범죄와 황폐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사회주의가 꿈꾸던 평등의 이상이 결국 인간 소외와 인간 본성 간과로 귀결되듯, 건축도 그 이상을 좇다 오히려 사람을 밀어낸 셈이다.
솔직히 말해, 본인은 이런 건물에서 따뜻함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억압적이고, 무채색의 벽면은 사람의 감정을 닫아버린다. 좌우 대칭의 완결성을 자랑하는 듯한 구조는 “우리가 맞다”는 건축가의 아집처럼 보인다. 친구들이 웃으며 “사회주의 빌딩”이라고 말할 때, 나 역시 씁쓸한 공감을 한다. 그 못생김은 단순한 외형의 문제가 아니라, 건축이 사람보다 이념을 앞세웠던 흔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는 말한다. 장식을 덜어낸 솔직함, 거친 콘크리트의 힘 있는 미학. 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따뜻한 인간성을 찾기 힘들다. 건축은 결국 사람이 사는 공간이어야 한다. 사람이 소외되는 순간, 아무리 시대적 의도가 반짝였더라도 그것은 실패한 건축이다.
브루탈리즘 건물 앞에 설 때마다, 나는 그 차가운 벽 너머로 들려오는 단호한 목소리를 듣는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답이다.” 그러나 지금 내 대답은 명확하다. “시대는 변했고 그 답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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