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해운대 백사장에 발을 담그고, 실제로 드리프트를 하는 버스를 타고 다니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부산은 내 고향이고, 내가 지금의 나로 자라기까지 그 모든 시간을 함께한 도시다. 그래서일까. 요즘의 부산을 보면, 애정만큼 안타까움도 크다.
부산은 서울이 아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 서울이 수도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지금, 부산은 단순한 대체지가 되어선 안 된다. 우리는 전혀 다른 도시로서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그 가능성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이다.
부산은 지형부터 다르다. 태백산맥의 끝자락이 바다로 이어지며 만들어낸 이 도시의 선형 구조는, 다른 도시가 가질 수 없는 고유한 특징이다. 해안을 따라 도시는 길게 뻗고, 평지가 부족한 만큼 자연스럽게 고밀도 도시가 형성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몰려든 피난민이 만든 다세대 주택, 달동네, 상업지구는 마치 압축도시의 교과서 같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수성가형 계층이 등장했고, 국제시장, 부마항쟁 같은 역동적인 역사를 가능케 했다.
그렇기에 부산은 밀도의 도시이자, 변화의 도시다. 그 밀도는 단점이 아닌 기회가 된다. 예컨대 홍콩처럼 언덕길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거나, 수평 등고선을 따라 자율주행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 서울에서는 비효율적일지 몰라도, 부산에서는 혁신이 된다. 내가 고향 부산에서 체감했던 불편함은, 지금의 도시계획가들에게는 실험의 기회로 읽힐 수 있다.
무엇보다, 부산엔 바다가 있다. 그저 경치를 위한 존재가 아니다. 세계의 대도시가 해안선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듯, 바다는 곧 도시의 시그니처이다. 한강과는 다르게, 부산은 24시간 바다가 ‘열려 있는’ 도시다. 이 수변공간을 어떻게 다르게 설계할 것인가에 따라 부산의 미래가 달려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서울식 개발이 부산을 덮고 있다. 북항 개발은 갈피를 못 잡고, 바다를 등지고 고층건물을 올리고 있으며, 해상 교통망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수평적 교통, 보행 친화적 거리, 해양 친수 공간은 여전히 계획서에 머물러 있다. 부산 출신으로서 안타까움을 느끼는 지점이다.
부산이 변해야 할 방향은 ‘더 서울처럼’이 아니다. ‘더 부산답게’다. 서울이 한겨울에 영하 15도를 찍을 때, 부산은 영상권을 유지한다. 서울에서 가능하지 않은 겨울형 해양 라이프스타일이 부산에서는 가능하다. 이를 도시 마케팅 자산으로 끌어올리고, 겨울 한 달간 부산살기와 같은 다른 삶의 방식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고향에 계신 어르신들, 바닷가를 그리워하는 수도권 사람들 모두에게 ‘살고 싶은 도시’가 되어야 한다.
부산은 대한민국 최초의 광역시였다. 그리고 이제는, 서울과는 완전히 다른 도시의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후보지다. 바다, 고밀도, 생활환경, 인프라 실험의 여지. 어느 것 하나 서울이 흉내 낼 수 없다. 과제는 부산 스스로 그 잠재력을 믿고, 정책과 상상력을 거기에 쏟아부을 수 있는가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부산. 그 도시가 단순한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대한민국 도시계획, 나아가 지방 회생의 미래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나 역시 ‘돌아가 살고 싶은 도시’로 다시 부산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