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슬로베니아 대사가 전하는 외교관의 진짜 미래

주한 슬로베니아 대사가 전하는 외교의 진짜 미래
이미지 : Canva

교과서 속 국제관계학은 거대하다. 강대국과 약소국의 역학 관계, 국가 이익의 충돌 등 거시적인 이론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외교인 대사관에서 만난 외교관의 삶은 훨씬 더 인간적이고 생생했다. 본 기자는 25년 차 베테랑 외교관이자 한국 부임 4년 차를 맞이한 주한 슬로베니아 대사를 만나, 그가 걸어온 진로 여정과 외교관으로서의 치열한 경험,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한 진심 어린 조언을 담아보았다.

기자의 꿈에서 외교관으로

대사의 대학 시절 전공은 사회과학대학의 국제관계학 및 국제협력 (International Cooperation for International Relations) 이었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외교관을 꿈꿨던 것은 아니라고 고백했다. 원래 그의 꿈은 세계를 누비며 취재하는 국제부 기자 (International Reporter)였다. 외교부에 발을 들인 것은 우연한 기회에 채용에 응시하면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그는 25년이 지난 지금도 이 직업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

특히 그가 대학 시절 쓴 졸업논문의 주제는 매우 흥미롭다. 바로 ‘외교 정책 결정에 있어서 개인의 역할 (The role of individual in foreign policy decision making)’ 이었다. 대사는 거시적인 국제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이나 총리가 바뀌면 국가의 외교 방향이 달라지는 것처럼 결국 국가의 행동을 이끄는 것은 특정 개인의 성향과 심리적 프로필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를 계기로 그는 전공 공부 외에도 심리학, 사회학, 철학 등을 깊이 공부했고, 이것이 현재 베테랑 외교관이 되는 데 가장 훌륭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전했다.

“외교관이 가장 중요한 실전 역량 중 하나는 회담장에 들어섰을 때 방 안의 공기를 읽는 능력 (Read the room)입니다. 사람들이 말하고 바라보는 방식을 통해 상대방의 심리와 성향을 파악하면, 상대방의 입장에 맞춰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식은땀 흘리던 순간부터 생명을 구한 순간까지

25년 동안 외교관으로 살아가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대사는 솔직하게 가장 치열했던 순간과 가장 보람찼던 순간을 모두 들려주었다.

대사는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수년 전, 슬로베니아 수도(본부)에서 정치국장 (Director General for Political Affairs)으로 근무할 때를 꼽았다. 그는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특정 환경 정책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았으나, 정부 대표로서 국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그 정책의 당위성을 논증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는 “내가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논리를 펼쳐야 해서 정말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고,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고 회상하며, 외교관이라는 직책이 가진 무거운 책임감을 보여주었다.

대사는 가장 보람찼던 기억으로 그가 주니어 외교관 시절 수행했던 24시간 비상 근무 (Emergency service) 중에 일어난 일을 언급했다. 어느 토요일 아침, 한 여성이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와 여권이 만료된 것을 방금 확인했다고 울부짖었다. 그녀는 월요일에 런던에서 ‘심장 이상 수술 (Heart transplant)’이 예약되어 있어 당장 일요일에 출국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대사는 즉시 영사 부서에 연락을 취했고, 예외적인 조치를 통해 일요일 당시 새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공항에 무사히 도착한 여성은 눈물을 흘리며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와 “당신이 내 생명을 구했다. 오늘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면 월요일에 심장을 기증받지 못해 살 수 없었을 것”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대사는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의미가 있구나, 진짜 사람을 돕고 있구나라는 깊은 만족감을 느꼈던 순간”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미래 세대를 향한 따뜻한 제언

4년 전 한국에 부임한 대사는 자신의 임기 동안 집과 사무실만 오가며 그 나라를 경험하지 않는 대사가 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전히 직접 밖으로 나가 한국의 이웃들, 친구들과 대화하며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온전히 경험하려 노력한다.

외교관이나 국제관계 전문가를 꿈꾸는 청소년과 대학생 후배들에게 대사가 전하는 핵심 조언은 바로 다양성에 열린 포용력이다.

유럽이나 특정 국가가 세계의 중심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우리와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가장 중요한 자질은 ‘왜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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